정약용은 고금도서집성을 어떻게 활용했는가


정조 시대는 단순히 왕이 통치하던 시기가 아니라, 학문과 지식이 중심이 된 통치 실험의 시기였다. 이 시대에 태어난 실학자 정약용은 실용과 개혁의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쳤고, 그 지식의 배경에는 고금도서집성이라는 전대미문의 백과사전이 있었다. 고금도서집성은 청나라에서 편찬된 문헌이지만, 조선에 반입된 이후 정조의 지시에 따라 번각과 재편집이 진행되었고,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은 이 방대한 정보를 토대로 조선 사회 개혁의 사상적 기반을 다졌다. 이 글에서는 정약용이 고금도서집성을 어떻게 이해했고, 어떻게 자신의 철학에 통합했는지를 살펴본다.

정약용과 고금도서집성의 만남

항목 내용
활동 시기 18세기 후반 ~ 19세기 초
고금도서집성과의 관계 정조 시절 규장각에서 필사와 열람 경험
활용 방식 실용 지식 기반 확보, 문헌 비교, 정책 구상 자료로 사용
영향 받은 분야 농업, 행정, 군사, 의학, 건축, 법률 등

실용 지식의 창고로서 고금도서집성

정약용은 고금도서집성에서 농업 기술, 토지 제도, 인재 선발법, 형벌 체계 등 다양한 실용 지식을 추출해 자신의 저술에 반영했다. 예를 들어 목민심서의 재정 파트에서는 당대 중국의 세금 징수 방식과 비교하여 조선 현실에 맞는 합리적 방식을 제안했으며, 경세유표에서는 인재 등용 제도를 고금도서집성의 인물 기록과 함께 분석해 구조적 개혁을 설계했다.

문헌 비교와 비판의 도구

정약용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고금도서집성에 실린 내용을 조선의 다른 고문헌이나 실제 행정 기록과 비교했고, 때로는 해당 정보가 조선의 현실과 맞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적 비교는 그가 단지 독서가가 아니라, 실천적 지식 설계자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건축과 수리 기술에서의 실제 활용

정약용은 화성 축조와 수리 시설 설계 과정에서도 고금도서집성에 실린 중국의 성곽 설계법, 수차 제작도, 둑 쌓기 기술 등을 참조했다. 이러한 기술은 단지 도면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토질과 기후에 맞춰 재조정되고, 현장에서 직접 실험되었다. 그 결과 화성은 과학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도시로 완성되었고, 이는 고금도서집성 기반 기술 응용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지식의 현지화, 실학의 탄생

정약용은 고금도서집성을 통해 중국 문명의 방대한 지식을 습득했지만, 그 지식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학문을 넘어서 조선 실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의 흐름이 탄생했고, 그 철학은 사람 중심의 정치, 자연과학적 사고, 윤리와 제도의 조화를 핵심 가치로 삼았다. 즉 고금도서집성은 정약용 사상의 기초 자료이자, 실학의 창조적 원천이었다.

결론: 책 속에서 제국을 설계한 실학자

정약용은 고금도서집성을 책장 속에만 두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들고 나와 농촌에 적용했고, 관료 제도에 대입했으며, 도시 건설과 법률 개혁에 활용했다. 그에게 책은 지식을 넘어서 실천의 연료였고, 지식은 곧 사람을 바꾸는 기술이었다. 고금도서집성은 조선의 백과사전이 아니었지만, 정약용을 통해 조선의 사상과 정책을 다시 설계하는 실천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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