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유교적 질서 위에 세워진 국가였지만, 그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실용적이고 치밀한 지식 체계를 지니고 있었다. 왕과 신하들은 정치만 고민한 것이 아니라, 지리, 제도, 외교, 자연, 기술에 이르기까지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정리하고 축적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이러한 조선의 집단적 지식 욕망은 여러 형태의 ‘백과사전형 문헌’으로 남았으며, 대표적으로 성호사설, 동국여지승람, 동문휘고 같은 방대한 문헌들이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세 가지 책을 중심으로 조선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고, 지식을 어떻게 조직했는지를 분석해본다.
조선 시대 지식 백과 문헌 비교
| 서명 | 편찬 시기 | 성격 | 주요 내용 |
|---|---|---|---|
| 성호사설 | 18세기 (영조 대) | 사적 지식 백과 | 천문, 지리, 동식물, 정치비판, 문화 등 |
| 동국여지승람 | 15세기 (성종 대) | 공식 지리 백과 | 전국 지리, 인물, 사찰, 제도, 역사 등 |
| 동문휘고 | 18세기 (정조 대) | 외교 문서 백과 | 대청, 대일 외교문서 정리, 외교 격식, 사례 수록 |
성호사설 – 민간 지식인의 거대한 지적 세계
성호사설은 실학자 이익이 집필한 방대한 사설집이다. 천문, 지리, 산수, 생물, 정치 제도, 군사, 사회 풍속, 유학 비판에 이르기까지 조선 사회 전체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 책이다. 이 책은 개인이 썼지만, 그 내용은 국가 백과사전급으로 정리되어 있다. 특히 유학 중심 가치관을 넘어선 자연과학적 사고와 실용주의 관점을 담고 있어, 당대 유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이후 정약용 등 실학자들에게도 깊은 사상적 자양분이 되었다.
동국여지승람 – 조선판 국가 정보 총람
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성종 때 편찬된 국가 공식 지리지다. 전국의 모든 군현을 중심으로 지리, 인물, 사찰, 고적, 산천, 교통, 경제 등을 정리했다. 이 문헌은 조선의 국가 운영에 필요한 ‘공간 기반 정보’를 집대성한 자료로, 행정, 국방, 역사 교육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겪으면서 다시 편찬·보완되며 군사적 가치도 높아졌다.
동문휘고 – 조선의 외교를 문서로 정리하다
정조가 편찬을 지시한 동문휘고는 조선의 대외 외교 문서를 정리한 외교 백과다. 조선이 청나라, 일본, 류큐 등과 주고받은 외교 문서, 국서(國書), 사행 관련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단순한 문서 모음이 아니라, 어떤 말로 외교를 시작하고, 어떻게 마무리했는지에 대한 격식과 관례가 정리되어 있다. 외교는 곧 국격이었기에, 이 문헌은 조선이 주변국과 어떤 자세로 관계를 맺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자료다.
지식을 조직하고 축적한 조선의 집단적 의지
이 세 가지 문헌은 서로 분야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조선이 ‘국가를 지식으로 이해하고 다스리려 했던 사회’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당대인들은 지리와 역사, 외교, 자연, 기술, 정치 등 모든 분야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그 내용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필사와 편찬에 엄청난 시간을 들였다. 이는 조선이 단지 유교 사회가 아니라, 데이터를 중심으로 국가를 설계한 집단 지식국가였음을 증명한다.
결론: 조선의 백과는 지식을 넘어서 세계관을 담았다
성호사설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비판적 통찰을, 동국여지승람은 공간과 행정의 체계를, 동문휘고는 외교와 국격의 언어를 담아냈다. 이 백과사전형 문헌들은 단지 정보를 모아놓은 문서가 아니라, 조선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고, 어떤 원칙으로 다스리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증거다. 지식은 권력이었고, 조선은 그 권력을 기록으로 조직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의한 나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