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전두환이 12·12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이후, 대한민국 제5공화국은 헌정 사상 최초로 '집단지도체제'라는 외형을 표방하며 출범했다. 하지만 이는 실질적으로는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권위주의적 통치 구조였으며, 동시에 관료제는 통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관료 중심의 정책 운영 시스템으로 전환되었다. 이 글에서는 전두환 정권의 집단지도체제 외피 속에서 어떻게 관료조직이 기술화되고, 전문행정 중심으로 재편되었는지를 분석한다.
📌 집단지도체제의 명분과 실체
제5공화국 헌법은 국무회의 중심의 집단적 국정운영을 명시하고 있었고, 초기에는 대통령·국무총리·장관단 간의 합의와 협력을 강조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실제 정권 운영은 전두환 1인의 강력한 결재·지시 체계로 이뤄졌고, 집단지도체제는 정치적 명분을 위한 형식적 수사에 불과했다.
- 국무총리: 실질적 권한 없는 조정형 인물
- 장관단: 대통령 직속 보고 체계 유지
- 국회: 대통령 통제 하에 형식적 역할 수행
📌 전두환 정부의 기술관료 중심 행정 구조
전두환 정권은 기존 군사행정의 무능과 비효율을 개선하고자, 경제기획원, 과학기술처, 총무처 등 주요 부처에 기술관료 출신을 중용하기 시작했다. 기술관료란 전문적 행정 지식과 정책 분석 능력을 가진 관료로서, 군 출신보다 행정의 합리성과 실무성을 갖춘 인물들로 간주되었다.
📌 주요 기술관료의 등용 및 영향력 비교표
| 부처 | 대표 기술관료 | 기여 | 의미 |
|---|---|---|---|
| 경제기획원 | 정인용, 이승윤 | 5차 경제개발계획 설계, 산업구조 조정 | 정책 기획 능력 강화 |
| 과학기술처 | 박창규 | 기술투자 확대, 과학단지 조성 | 산업기술 인프라 구축 |
| 총무처 | 정무직 관료 출신 다수 | 공무원제도 정비, 행정절차 개선 | 행정의 체계화 |
📌 행정의 기술화가 가져온 변화
- 경제 관료 중심 통치: 외교·안보보다 경제정책 관료의 영향력 증가
- 국책연구기관과 연계: KDI, KIET 등과 협력해 정책 연구 활성화
- 정부위원회 체계 정비: 민간 전문가와 관료의 정책 협의 구조 형성
- 관료제 내 계층 상승 경로 명확화: 실적 중심의 인사 체계 강화
📌 권위주의와 전문행정의 모순
전두환 정권은 한편으로는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언론·정당·노동운동을 통제하는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성과 합리성을 앞세운 관료제를 운영하려 했다. 이 모순 구조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합리화를 유도했지만, 정책의 최종 결정은 여전히 정치적 권력에 종속되는 구조로 한계를 보였다.
📌 마무리하며
전두환 시기 관료조직은 형식적으로는 집단지도체제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 중심의 명령 체계 하에 운영되었다. 그러나 이전 군정기와 달리 전문행정 기능을 강화하고 기술관료를 정책 중심에 배치함으로써, 관료제의 효율성과 기능적 전문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 시기 형성된 정책기획 중심 행정, 연구기관 기반 정책수립, 실적 중심 승진 구조는 오늘날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의 핵심적 기반으로 남아 있다. 결국 전두환 시기의 관료제는 권위주의적 정치와 기술관료적 행정이 공존한 모순적 구조였으며, 그 유산은 민주화 이후에도 행정조직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