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생활 물가와 경제 구조

 


일제강점기는 조선 사회의 경제 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한 시기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 조선을 산업 자원 및 인적 자원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선인들의 생활 수준은 점점 피폐해졌으며, 동일한 노동을 제공하더라도 일본인과 조선인의 임금 격차는 현저하게 벌어졌다. 이 시기 물가와 경제 구조는 단순히 과거를 설명하는 지표가 아니라, 식민지 수탈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회경제적 지표이기도 하다. 당시 조선인들은 도시와 농촌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빈곤과 생활고를 겪었으며, 쌀값, 소금값,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계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러한 현실은 현재 우리가 이 시기를 해석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도시 노동자의 평균 임금과 지출 구조

일제강점기 후반부로 갈수록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조선인들이 공장과 토목 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1930년대 기준, 일반 조선인 남성 노동자의 일당은 약 0.6원~0.8원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직종의 일본인 노동자는 평균 1.5원 이상의 임금을 받았다.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이보다 더 낮아, 하루 0.3원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임금 구조는 도시 조선인 가정의 생계 유지가 매우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농촌 경제의 붕괴와 물가 상승

농촌 지역에서는 쌀과 면화의 강제 수출 정책으로 인해 내수 공급이 부족해졌고, 그 결과 생필품 가격이 급등했다. 쌀은 일본으로의 수출이 최우선되었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의 가격 안정은 뒷전으로 밀렸다. 조선인 농민들은 헐값에 수확물을 넘기고 다시 비싼 가격에 생필품을 사야 했다. 특히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일본 내 경제가 흔들리면서, 조선 농촌은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소비 격차

동일한 도시, 동일한 지역 내에서도 조선인과 일본인의 생활 수준은 크게 달랐다. 조선인들은 공동 주택, 반지하, 오두막 등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일본인들은 전기, 수돗물이 설치된 주택에 사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소비 품목에서도 조선인 가구는 주로 쌀, 보리, 김치, 소금 등의 기초 식료품에 지출을 집중했으나, 일본인 가구는 생선, 고기, 술, 채소류, 사치품 소비가 활발했다.

당시 주요 품목의 물가 표

품목 1935년 평균 가격 노동자 일당 대비 가격 비율 비고
쌀 1되 0.09원 약 11% (일당 0.8원 기준) 수출 우선으로 인해 가격 지속 상승
소금 1근 0.04원 약 5% 조선 소금보다 일본 소금 소비 강요
된장 1근 0.12원 약 15% 도시 가정 필수 소비재
석유 1병 0.15원 약 18% 등불용, 난방용으로 사용
장작 1단 0.20원 약 25% 겨울철 난방 필수품

경제 구조의 중심은 '수탈'에 있었다

조선인들이 생활 물가의 부담 속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 구조 자체가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철도, 항만, 산업 시설 등 각종 인프라를 조선인의 자산을 이용해 건설하고도, 그 혜택은 일본인에게 집중되도록 설계했다. 산업 자본, 금융, 교통망의 중심은 모두 일본 기업과 일본인 자본가가 장악했으며, 조선인은 그 구조 속에서 값싼 노동력으로만 존재했다. 이런 식민지 경제 구조는 단순한 빈곤을 넘어선 구조적 불평등의 산물이었다.

결론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생활 물가는 단순한 경제 수치를 넘어, 식민지 수탈 구조의 실체를 보여주는 생생한 지표다. 조선인들은 도시에서는 저임금 노동자로, 농촌에서는 헐값에 수확물을 넘기는 피해자로 존재했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의 생활 수준은 극명하게 나뉘었고, 이는 조선 경제 구조의 본질이 일본 제국을 위한 '착취 기반'이었음을 말해준다. 생활 물가를 중심으로 조선인들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역사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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