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고구려의 계승을 자처하며 698년에 건국된 나라로, 동북아시아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특히 발해는 행정 제도와 문화에 있어 당나라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독자적인 방식으로 이를 재구성하였다. 당시 동북아 정세에서 당나라는 명실상부한 중심 제국이었고, 발해는 당과의 외교 관계를 통해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이를 기반으로 체계적인 지방 행정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발해 특유의 지리적, 민족적, 정치적 조건을 반영하여 독자적인 구조로 발전시켰다. 본문에서는 발해의 지방 행정제도가 당나라와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을 보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살펴본다.
📌 발해의 지방 행정 조직 개요
발해는 전국을 5경 15부 62주의 체제로 나누어 행정 구역을 구성하였다. '5경'은 수도격인 상경룡천부를 중심으로 한 다중 중심 체계였고, 15부는 주요 지방 행정 구역, 62주는 그 아래의 세부 행정 단위였다. 이 체계는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지역별 자원을 수취하기 위한 실용적 행정 구조였다. 특히 부(府)와 주(州)는 각각 지방관이 파견되어 관할권을 행사하였다.
📌 당나라의 지방 제도 개요
당나라는 전국을 도(道) - 주(州) - 현(縣)의 3단계로 구분하였다. 도는 광역 행정 단위였고, 주와 현은 각각 중간 및 말단 행정 단위였다.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지방을 통제하였으며, 각 도에는 절도사, 각 주에는 자사, 각 현에는 현령이 배치되었다. 당나라는 이를 통해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 발해와 당나라 지방 제도 비교표
| 항목 | 발해 | 당나라 | 주요 차이점 |
|---|---|---|---|
| 최상위 행정 구역 | 5경 | 도(道) | 발해는 다중 수도 체계, 당은 광역 구분 |
| 중간 행정 단위 | 15부 | 주(州) | 발해의 부는 군사·행정 기능 결합 |
| 말단 행정 단위 | 62주 | 현(縣) | 용어는 유사하나 규모와 기능 상이 |
| 지방관 파견 | 중앙에서 파견 | 중앙에서 파견 | 기본 구조 유사 |
| 정치적 목적 | 다민족 통합과 중심성 확보 | 광역 제국 관리 | 국가 규모와 대상이 다름 |
📌 발해 제도의 독자성: 5경 체제의 의미
발해의 5경 체제는 단순히 행정 구역의 나눔이 아니라, 정치적·군사적 중심의 분산과 지역 통제의 효율성을 목표로 한 구조였다. 상경룡천부를 수도로 하되, 동경, 남경, 중경, 서경 등은 각기 지역을 대표하는 거점으로서 별도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는 유목민, 농경민, 해양 세력 등 다양한 지역 세력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려는 전략이기도 했다. 당나라는 이러한 다중 중심 체제를 갖추지 않았다.
📌 문화적 수용과 제도적 변형
발해는 당나라의 율령 체계를 수용하고, 문물 제도 전반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지방 제도에 있어서는 지방의 현실 조건에 맞게 구조를 재편하였으며, 중국식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고구려식 군사 제도와 병합된 형태로 운영하였다. 이는 발해가 단순한 문화 종속이 아닌 제도적 자율성을 갖추었음을 보여준다.
📌 마무리하며
발해의 지방 행정제도는 당나라의 선진적 행정 체계를 참고하면서도, 스스로의 정치·지리·민족 조건에 맞게 재구성된 독창적 시스템이었다. 당나라의 도-주-현 체제와 비교해보면, 발해는 보다 지역 중심적인 다극 체제를 운영했으며, 이는 민족 통합과 권력 분산이라는 전략적 목적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발해가 단순한 변방 국가가 아닌,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제도적 주체성을 가진 문명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